어떤 물질의 사랑

왕벌꿀 2020. 9. 9. 23:29

1. 천선란
2. 친절하다. 오전에 영화 컨택트를 보다 말았는데, 주인공이 언어학자였다. 어려운 문장으로 독자들의 기를 죽이는 거라고 했나? 암튼 그런게 하나도 없다. 보통 수준의 공감능력만 가지고 있다면. 충분히 유추할 수 있는 맥락과 흐름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작가의 말도 재미있었다. 보통 소설을 쓸때 어디에서 영감을 받는 편인지. 소재는 어떻게 잡게 되었는지. 각 단편이 말하고자하는 주제는 무엇인지를 간략하게 나마 설명해주고 있다. 김남준이 그랬었나? 미지의 영역을 남겨둬야 더 인기있는 것들이 있다고? 침묵해야 멋있어보이는 때가 있다고? 암튼 구구절절 설명하는 건 예술가의 신비주의를 깨트린다는 이야기가 있다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자신은 그 말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하더라. 어떻게든 나의 이야기를 하고 덧붙이고 설명해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이라는 말이 생각난다. 천선란도 그런 사람일까? 중요하지 않지. 친절한 책과 사람이 좋다.
3. 제목이 찰떡. 어떤 물질의 사랑이라니. 진짜 사랑 이야기로 가득 차 있어서 끄덕끄덕 하게 된다. 나는 가족에 결핍이 있는 사람이라 모성애라든가. 가족애라든가. 아무튼 그런게 나오면 좀 불편해하고 공감도 못하는. 편인데. 이상하게 잘봤다. 꽤 많은 부분이 가족에 대한 사랑을 이야기 하고 있었는데. 특히 대놓고 그 이야기를 하고 있는 <레시>는 끝부분을 읽을 때 거의 울뻔했다.
4. <두하나>는 페미니즘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걸 읽으면서 분명하게 느낄 수 있었다. 남자가 여자를 공격하는 설정 때문이 아니라. 두 하나들 때문이다. 내가 보기에 두 하나는 가부장제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사람이다. 진짜하나는 그들에게 죽임당했고. 두하나는 그들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 그리고 그들의 목소리를 해독하면서 괴로워하고 시체처럼 말라간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두 하나는 하나의 선상에 놓인 같은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중간에 화자가 두하나에게 하는 말이 인상깊었다. 우리는 너때문에 승리할 거라고. 하지만 그 세상에 반드시 네가 있어야 한다고. 그러니 죽지말고 살아있어야 한다고 말하고 싶어하는 것 같았다. 정말 용기있는 사람이다. 나는 과연 하나들에게 그래도 살아야 한다고. 같이 살자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인가?
치매걸린 엄마도. 마지막에 어딘가에 아직 살아있을 진짜하나를 찾으러 가는 장면도. 먹먹한 이야기다. 개인적으로 이 소설에서 가장 비극적인 소설이라고 생각한다.
5. 그래서 작가의 말에서 아이돌 이야기를 읽었을때. 곧바로 설리가 떠올랐다. 넌 그들과 나이가 비슷해서 슬퍼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는 게 정말 공감됐다. 나는 설리와 구하라의 죽음이 2020년의 20대 여성들에게 집단적인 트라우마를 남겼다고 믿는다. 나도 그당시에 자꾸 자꾸 죽어나간다는 말을 입속에 읊조리면서 살았던 것 같다. 아무리 세상이 정나미가 떨어져도 산 사람은 서로 사랑하며 살아야한다는 아이유 말을 들을 때도 그랬다. 왜 자꾸 죽어나갈까..
내가 잠못이루었던 날 밤에 누군가도 잠못이루면서이 소설을 썼을거라고 생각하니 천선란이랑 같은 방에 앉아있는 느낌이다. 무슨 기분인지 모르겠어서. 서글펐던 새벽에 몇번이나 생각했던 문장을 옮겨적을 이야기. 나는 답없다며 손사레 치고 빨리 털어버리고 싶어했던 그 감정을 누군가는 절대 잊지 않기위해 소설을 썼다고 생각하니. 천선란과 내가 아주 친한 사람이 된 기분이다.
6. 천개의 파랑도 얼른 읽고 싶기도 하면서 아껴 읽고 싶기도 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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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물질의 사랑 천선란

사막에 대해 글을 써보는 건 어떠니?

하지만 저는 사막에 가본 적이 없어요.
사람이 보는 것을 쓰는 건 아니잖니. 본다고 믿는 것을 쓰지.

그때부터 세상의 척박함과는 별개인 또 다른 사막이 내 안에 생겼다

사람의 직감은 인류 데이터의 총 집합이므로 지금은 어떤 것보다 자신의 직감이 맞을 것이다.

사고는 예기치 못하게 일어나지 않는다. 모둔 사고는 예상 가능했다. 단지 막을 방도가 없었을 뿐이다.

아이의 시체를 품에 안아보지 못했으므로 그렇게 기주는 살지도, 죽지도 않은 존재가 되었다.

세상이 이렇게 얼렁뚱땅 생겼다는 걸 엄마를 통해 배웠다. 세상은 치밀해 보이지만 사실 대체로 엉성하고 얼럴뚱땅 넘어간다는 것을.

사람들은 가끔 이유없이 누군가를 미워해. 그냥 상처 주고 싶어해. 그러니까 저 사람이 왜 나에게 상처를 주려는지 네가 생각할 필요 없어.

하여튼 간에 엄마는 좀 이상했다. 엄마가 이상한 덕분에, 정말로 이상한 나도 덩달아 아무렇지 않을 수 있었다.

언니는 격월마다 극심한 생리통에 시달렸다. 나도 생리를 했다면 언니의 아픔에 다 크게 공감할 수 있었을까.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아픔은 체험의 문제가 아니었다. 그 아픔을 느껴봤든 아니든 그건 중요하지 않았다. 내 공감과는 상관없이 언니는 아프니까. 그러므로 나는 최선을 다해 언니의 등을 문질렀다.

세상은 다양하구나 존재하는 것도 이해할 수 없는게 세상인데, 앞으로 보이지도 않고 형태도 없는 미래 걱정은 좀 덜해야겠어.

나는 라오의 비닐조각을 발견한 후에야, 엄마의 말을 인정했다. 세상은 다양한데 모두가 다양하지 않은 척을 하고 있다는 걸 말이다.

그런 생각이 들자, 나는 곧바로 왜 이세상에서는 사람을 명확하게 규정해야만 하는지에 대해 고민했다.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다. 누군가를 찾을 때 이름과 나이, 사는 지역, 성별을 정확하게 알아야만 그 사람을 특정 지을 수 있다. 하지만 애초에 지구에 그런 게 없었다면, 나같은 사람들이 많아서 성별로는 나를 특정 지을 수 없었다면, 지구에는 다른 기준이 생기지 않았을까.

나는 엄마가 홀로 삶을 살아가면서 외롭지 않을 수 있었던 이유를 깨달았다. 우주 어딘가에는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이 있고 이 지구에는 엄마를 응원하는 동료들이 있었다. 내가 내 삶을 바쁘게 꿰어나가는 동안 엄마도 엄마의 삶을 차분히 꿰어나가고 있었던 것이다.

내가 죽었다는 것을 오래도록 곱씹을 것이다. 그러다 어느 순간 사탕이 쪼개지듯 통증이 밀려 오겠지.
그게 무슨 느낌일지는, 아직은 모르겠다.


게이트를 통과하자 겨울 공기가 닿았다. 지구의 주인은 인간이 아니라는 것을, 지나는 인간사와 상관없이 흘러가는 지구를 통해 되새겼다. 너무나도 당연한 것을 망각하고 살았다. 추위는 생명체가 살아가는 데 더없이 최악의 환경임에도 불구하고 착실히 겨울이 온다. 이 상태로 인간이 완전히 사라진다면 지구는 잠깐의 격변을 겪다가 아주 아름답게 회귀할 것이다.

혹시나 아픔이 될까 여태껏 품지 않으려고 노력했던 문장이, 피할 수 없이 지나를 감쌌다.

작가의 말

세상을 알아갈수록, 지구는 엉망진창이다. 바꿔야 할 것이 너무 많은데 인구수만큼 존재하는 사공이 산도 아닌 우주로 날려버리는 것 같다. 나 하나가 방향을 잡고 노를 젓는다고 해서 바뀔까? 내가 가는 방향을 옳은 방향일까? 이런 생각들을 언제나 하고 있지만, 결론은 하나다. 저어야 한다. 내가 옳다고 믿는 방향으로.